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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4

조선에 온 여성 의료선교사 로제타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고대 의과대학) 동대문부인병원(이대 부속 병원) 설립 로제타 홀 [ Rosetta Sherwood Hall ]의료선교사이자 교육자. 평양에 여성치료소 ‘광혜여원’과 맹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설립했다. 뉴욕맹인교육학원의 원장 W.B.웨이트가 개발한 ‘뉴욕 점자’를 한국어에 맞게 자신이 개발한 교재를 이용하였다.(두산백과) 10월 10일에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맞닿은 조선은 로제타홀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우리는 부산항에 24시간 동안 머물 것입니다. 멀리 보이는 언덕과 산들은 매우 가파른 바위투성이었습니다.. 조선은 무척 황폐해 보였습니다.몇몇 조선인들이 보였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남자들뿐이었습니다. 여자들은 해가 질 때까지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로제타의 일기엔 당.. 2025. 3. 7.
호머 헐버트 고종의 외교자문 독립운동가 선교사 한국을 뜨겁게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가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조선에 도착한 것은 1886년입니다. 당시 헐버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가 살던 뉴욕과 달리 근대 문명이 닿지 않은 조선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헐버트는 오자마자 어머니에게 잘 도착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서울의 첫인상을 이렇게 적었습니다.'어머니, 서울은 쾌적한 도시입니다. 제가 얼마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잘 지내고 있는지를 알면 어머니는 안도하실 겁니다. 서울은 높이 치솟은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원형극장 한가운데 놓여 있는 느낌입니다.' 조선왕조가 끝나고 근대로 나아가던 때, 격동의 나라를 보내고 있던 대한제국 한국인들 속에 그가 있었습니다. '조선은 이제 막 문명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문턱에서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 2025. 2. 27.
마포삼열 (사무엘 모펫) 선교사의 한국 사랑과 독립 운동 거리에서 수천 명의 한국인을 보았습니다.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만세, 만세를 외쳤습니다. 만세 함성이 온 나라를 뒤덮었던 1919년 3월 1일, 그날에 역사를 만든 주역 중에 놓친 사람이 있습니다. 평양의 만세 시위 현장에서 고통받는 한국인의 삶을 치유하고 싶었던 우리 조선의 독립을 바라신 분이 바로 마포삼열 목사님입니다. 핍박받는 한국인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숨은 공로였습니다. 가장 약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삶을 내어놓을 수 있었던 20세기에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선교사 중 한 분입니다. 3.1 운동 연구의 중심기관인 독립기념관은 서울 특히 탑골 공원 쪽으로만 만세 시위를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평양을 비롯한 북한 지역의 일곱 개 도시에서 동시에 만세 시위가 시.. 2025. 2. 26.
찰스 스펄전 영혼의 설교자 찰스 스펄전은 1834년 6월 19일 에섹스 캡에 돈에서 존 스펄전과 엘리자 스펄전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 교회의 목사였으나, 충분한 생활비를 받지 못해 석탄 상인의 회계 업무를 병행했습니다. 스펄전 가문은 강한 비국교도의 전통을 가졌으며, 그의 조상들은 네덜란드 개신교의 피난자들로 1568년 로마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습니다. 10살 때 스펄전은 콜체스터로 이사한 후 건강상의 이유로 할아버지와 고모의 보살핌 아래 자랐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스텐본에서 독립 교회의 목사로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린 스펄전은 지적 호기심이 많고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아이였으며, 특히 종교적 교육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도서실에서 존 번연의 "천.. 2025.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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